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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크리스마스 이야기

그냥 쓰는 사람 2023. 10. 2. 22:42





크리스마스 이야기

 

 

 

Baby, It's Cold Outside (Glee Cast Ver.)

 

 

 

 

 

사진 출처: 조선호텔리조트

 

 

 

우린 함께 호텔로 향했다. 우리 사귀고 나서 처음으로 지내는 크리스마스니까 좋은 호텔에서 지내자고 약속했었다. 서울에 있는 화려하지만 정숙한 호텔로 예약했다. 날씨도 오후 4시쯤 되니 살살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길거리엔 빨간색, 초록색, 따뜻한 조명색으로 가득 찼고, 재즈풍의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껏 들뜬 표정으로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 여자친구도 그들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날 바라보면서.

 

우리는 저녁으로는 분위기 좋은 가게에서 밥을 먹었다. 수현이가 얼마 전에 먹어보고 싶다고 무슨 맛일지 궁금하고 했던 나는 조만간 가보자 라고 대답했던 가게였다. 예상대로 수현이는 기대했던 만큼 맛있다며 발을 둥둥 구르며 행복해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까지 행복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밥 먹는 모습만 봐도 나까지 배가 불러진다는 말이 이 말이었을까. 저녁식사와 함께 가벼운 주류를 곁들였고 살짝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호텔에서 먹을 디저트를 사러 갔다. 호텔 근처에 디저트가게가 있어 우린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한껏 서로에게 붙어 걸어갔다. 우리나라의 좋은 점은 여자끼리 팔짱을 끼고 손을 잡아도 그냥 친한 사이인가보다 하는거. 동성친구끼리고 자주 하는 스킨십이니까.

 

디저트와 와인을 사고 호텔로 향하는 길에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술에 취해 여자친구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졌다. 그리고 수현이를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기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체크인을 하고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너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볼과 입술에 키스를 했다. 수현이도 추위로 발갛게 된 뺨으로 웃으며 나도 너랑 같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누구라도 떨어질 생각이 없는 것처럼 딱 붙어서 객실로 향했다. 객실로 들어섰을 때 누가 먼저랄것없이 서로의 입술을 탐했고, 서로의 옷을 한 겹씩 벗기기 시작했다. 우린 천천히 서로의 몸과 마음을 느끼며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서로 달궈진 몸을 만지며 키스를 했다. 서로 뒤치락 엎치락하며 누가 먼저랄것없이 서로를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누군가 우리를 찢어놓으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꼭 껴안고 있었다. 

"와 밖에 봐봐"

내 등뒤에 있는 널찍한 창문을 보고 수현이가 말했다. 나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형형색색의 조명들과 아까보다 눈밭이 더 굵어져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껏 나고 있었다. 그제서야 객실을 둘러보고서 멋지다라며 감탄을 했다. 귀여워. 이맛에 돈쓰는거지!

 

우리는 짐을 정리하고 디저트와 와인을 준비해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재즈풍의 캐럴음악을 틀었다. 여태 살아오면서 나랑 음악취향이 겹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주로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을 선호했다. 내 취향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다른 사람이 다른 노래 틀어도 되는지 물어보며 항상 템포가 빠르고 신나는 노래를 틀곤 했다. 작년 어느 작은 모임에서도 내가 음악을 선곡할 일이 생겨 블루투스 스피커로 연결해서 잔잔한 음악을 틀었다. 그렇게 한 두 곡이 지나갔을 때 언제나처럼 같은 레퍼토리로 템포가 빠른 음악으로 변경했다. 그때 차분한 분위기를 원했던 나는 익숙한 상황에서도 조금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었을까. 어떤 분이 나에게 본인도 방금 선곡이 참 좋아한다고 말해줬다. 참 섬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섬세해서 관심이 갔고, 그냥 아는 사람이 내 음악취향과 비슷한 사람이 되었고, 나랑 친한 사람이 되어 지금 나랑 사귀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사랑하는 것. 그만한 행복이 있을까.

 

우리는 서로 말주변은 별로 없었지만 항상 둘이 함께면 퀘퀘묵은 옛날이야기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변했다. 아직도 너라를 사람을 모르는 게 참 많아 더 알아가고 싶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얼어있던 몸이 난방으로 노곤노곤해져 조금씩 눈이 감겨왔다. 씻을까? 수현이가 먼저 욕실로 들어가서 씻고 나는 뒷정리를 했다. 욕실에서 뿌연 김이 나왔다. 창틀에 기대 바깥 풍경을 보니 도로 위의 차량의 불빛과 길거리 조명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언제 이런 생각을 가질 시기가 있었을까. 바깥 풍경을 보고 있자니 뿌연 김 사이에서 여자친구가 젖은 머리와 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너도 얼른 씻어~라고 하며 로션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는 씻은 여자친구 목에 코를 묻고 숨을 깊게 들이켰다. 씻고 나온 수현이에게서 나는 비누냄새와 뜨거운 온도의 냄새가 기분을 참 좋게 한다. 수현이는 얼른 씻으라면서 나를 살짝 밀쳐내고 웃었다. 나는 알겠다며 욕실로 갔다. 하루 종일 냉동과 해동을 반복한 몸을 뜨거운 물로 씻고 있자니 개운해지고 하루의 피로들이 녹아내려져 가는 듯했다. 하. 살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다 씻고 가운을 걸치고 욕실로 나오니 수현이가 창문으로 바깥 풍경을 보면서 와인을 한 잔 더 마시고 있었다. 내가 나오자 핸드폰을 만지더니 노래가 나왔다. 경쾌한 재즈 피아노의 선율. 

 

푸하하. 웃음이 나와버렸다. 내가 말한걸 기억하고 있구나. 원곡은 남녀 두 사람이 듀엣으로 하는 곡이었는데 글리라는 드라마에서 게이 두 명이 같이 부르는걸 보고 "나중에 애인이 생기면 크리스마스때 같이 불렀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했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때는 수현이에게 아직 커밍아웃도 고백도 안한 상태여서 이런 말을 하며 은연중에 노래부르는 그들과 같은 동성애자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수현이도 그걸 알았을까? 그때 사귈 때도 아니었는데 내가 이 노래를 너랑 같이 부르고 싶다고 받아드렸었을까? 이래서 너가 너무 좋아 수현아.

 

I really can't stay
Baby, it's cold outside
I've got to go away
Baby, it's cold outside
This evening has been
Hoping that you'd drop in
So, very nice
I'll hold your hands, they're just like ice
My mother will start to worry
Beautiful, what's your hurry?
My father will be pacing the floor
Listen to that fireplace roar
So, really I'd better scurry
Beautiful, please don't hurry
But maybe just a hald a drink more
I'll put some records on while I pour
The neighbors might think
Baby, it's bad out there
Say, what's in this drink?
No cabs to be had out there
I wish I knew how
Your eyes are like starlight now
To break this spell
I'll take your hat, your hair looks swell
I ought to say, "No, no, no sir"
Mind if I move in closer?
At least I'm gonna say that I tried
What's the sense in hurting my pride?
I really can't stay
Baby, don't hold out
Baby, it's cold outside
Ugh, you're very pushy, you know?
I'd like to think of it as opportunistic
I simply must go
Baby, it's cold outside
The answer is, "No"
But, baby, it's cold outside
The welcome has been
How lucky that you dropped in
So nice and warm
Look out the window at that storm
My sister will be suspicious
Gosh, your lips look delicious
My brother will be there at the door
Waves upon a tropical shore
My maiden aunt's mind is vicious
Gosh, your lips are delicious
But maybe just cigarette more
Never such a blizzard before
I've got to get home
Baby, you'll freeze out there
Say, lend me your comb?
It's up to your knees out there
You've really been grand
I thrill when I touch your hand
But don't you see?
How can you do this thing to me?
There's bound to be talk tomorrow
Think of my life-long sorrow
At least there will be plenty implied
If you got pneumonia and died
I really can't stay
Get over that hold out
Baby, it's cold
Baby, it's cold outside
Okay, fine, just another drink
That took a lot of convincing

 

수현이는 노래를 부르면서 사뿐거리는 발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노래에 맞춰 제스쳐도 잊지않고 했는데 우린 정말 웃음이 터져서 노래가 멈추지않기를 바랬다.  그렇게 3분도 안되는 곡이 끝나고 우린 서로에게 입맞추고, 서로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맞다. 우리 영화 볼까? 하고 TV를 틀어 OTT서비스에서 크리스마스 때 보자고 둘이서 골라놨던 영화를 틀었다. 우리는 호러 마니아였음을..! 진짜 너랑 크리스마스 때 무서운 영화 봐서 너무 좋다. 나도. 서로를 보고 진짜 행복해했다. 아 진짜 사랑스러워. 영화 내용은 항상 비슷했다. 악마가 나오고 퇴마를 시도하나 악마가 너무 강해 실패하지만 결국 퇴마에 성공한다. 하지만 악의 끄나풀이 있어 결국 후속 편이 나올듯한 내용. 영화가 끝나고 수현이와 영화에 대해 토론을 했다. 어느 부분이 아쉬웠고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 갔고 어느 부분 진짜 놀랐다는 점. 너라면 주인공 처럼 했을 거야? 나라면 이랬을 거야라는 상상을 하며 우리는 즐겁게 이야기했다. 피고했던 몸이 노곤곤했던게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지고 수현이랑 이 밤을 더 오래오래  놀고싶어졌다.

 

서로의 옆에 누워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온기가 느껴져서 따뜻했고, 와인의 취기가 확 올랐다. 술 때문일까. 아님 너 때문일까. 손을 잡을 수도 있고, 눈을 더 가까이 마주 볼 수 있어 좋았다. 수현이는 항상 내가 빤히 쳐다보면 부끄러운 듯 눈을 피하곤 한다. 그런 수현이가 귀여워서 더 쳐다보면 수현이는 닳겠다고 그만보라며 날 살짝 밀쳐내곤 했다. 그런 수현이가 오늘은 평소와 같이 눈을 살짝 피했지만 이내 눈을 맞췄고, 오히려 당황한 나는 웃어버렸다. 그냥 이렇게 계속 바라만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따뜻한 입술을 포갰다. 포근한 이불과 부드러운 입술에 따뜻한 체온. 어느새 갈아입은 잠옷사이로 와인과 서로에 의해 뜨거워진 몸을 만졌다. 믿을 수 없이 행복한 밤이었다.